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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가만난세상] 사랑할 시간도 부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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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7-07-21 20:56:38 수정 : 2017-07-21 23:2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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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서른의 K는 무명가수와 사랑에 빠졌다. 다른 이들도 아니고 K가 사랑에 빠졌다는 건 조금 놀라운 소식이었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시니컬한 표정으로 ‘연못녀(연애 못하는 여자)’라고 자칭했던 그녀여서다.

K의 나이 ‘서른’은 날콩처럼 비리고 김빠진 콜라처럼 밋밋한 나이다. 흔히 말하는 ‘혼기’를 맞은 나이라 감정 하나로 사람을 만나는 건 쉽지 않다. 번듯한 직업을 가진 데다 장녀인 K는 은연중에 직업이나 가정환경이 좋은 사람을 만나야 한다는 압박도 받고 있었다. 그런 K가 기타를 치고 노래를 부르며 음악을 만드는 사람과 사랑한다.

“연애를 할 때 이것저것 조건을 따지는 것은 무의미한 것 같아. 사랑이라는 감정에 충실하는 게 좋은 거야.”

K는 환한 미소로 말했다. 사랑하는 감정 하나만 믿고 연애를 하는 그녀는 분명 행복해 보였다.

반면 L과 P는 위태로운 관계를 이어나가고 있다.

그들은 서로를 향하는 감정을 확인했지만 연인이라고 말하기에는 무언가 부족한 관계다.

L은 내년에 사업 때문에 중국으로 간다. 언제 돌아올지도 모른다. 끝까지 P를 책임지기 어렵다는 생각이 L을 망설이게 하고 있다. 어쨌든 두 사람은 자주 만나며 일상을 공유한다. 그렇게 서로의 감정을 키워나가고는 있지만 뭔지 모를 불안감도 함께 한다. L이 P에게 확신을 주는 것을 망설이는 동안 그들이 사랑할 수 있는 시간은 시나브로 사라져 가는 중이다. 

김범수 사회부 기자
서른살 전후의 청춘들은 저마다의 고민으로 사랑할 시간을 놓친다.

결혼을 고민할 수밖에 없는 나이다 보니 눈앞에 있는 상대를 두고 저마다의 잣대를 대어 저울질을 하는 것이다.

고민의 항목에는 직업, 재산, 가정환경, 성격, 외모 등이 올라가기 마련이다. ‘기회비용’이라고 해야 할까. 남은 시간이라는 한정된 자원으로 최선의 선택을 하려는 것이니 말이다.

몇년 전부터 남녀 관계에서 흔하게 쓰이는 ‘썸’이라는 단어도 비슷한 맥락에 놓여 있지 않나 싶다. 썸을 해석하면 ‘남녀 사이에 무언가(something) 있다’는 뜻으로 서로를 향한 감정은 있지만 연애를 하지 않는 상태를 말한다. 남녀 간의 썸은 잠깐 달달하지만 그것이 실제의 연애로 발전하지 못하면 더 큰 기대를 품은 한 쪽이 마음의 상처를 받기 마련이다.

최근 성인 남녀 328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설문조사에서 56%가 연애로 이어지지 못하고 썸으로만 끝났다고 응답했다. 썸으로 끝난 가장 큰 이유로 ‘서로에 대한 확신이 없었다’는 응답이 꼽혔다. 이들 중 5%는 무미건조한 육체적인 관계까지 가졌다고 한다. 이처럼 한없이 가볍기만 한 썸은 청춘남녀가 조건을 따지다가 생겨버린 ‘사랑의 유예기간’은 아닐까.

공자는 논어에서 “나의 도는 하나로 통한다(一以貫之·일이관지)”고 말했다. 공자의 말을 청춘들에게 적용한다면 연애의 일이관지는 사랑이라는 감정 하나로 통한다. 연애는 기회비용을 고려해 효율적으로 투자하는 비즈니스도 아니다. 상대의 조건을 따지다가 곁에 있는 소중한 사람과의 시간을 잃게 될지도. 사랑만 해도 시간은 너무 부족하다.

김범수 사회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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